place in cinema_ 영화 '자유의 언덕'의 공간, 북촌

  • 사진_최순호, 글_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입력 : 2015.08.31 11:26

     

    도박의 세계를 그린 피와 살이 튀는 액션 영화의 공간으로는 어떤 곳이 어울릴까? 차가운 네온 사인 빛이 감도는 강남 유흥가? 누구 하나 죽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을 서울 근교의 폐공장? 혹은 추격전이 펼쳐지는 대낮 도심의 대로? 아니면 <타짜>에서 고니와 아귀가 대결을 벌이던 부둣가에 정박된 배 안? 그런 점에서 <신의 한 수>는 의외다. 거액의 판돈은 기본, 목숨까지 오가는 처절한 내기 바둑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의 공간은 서민적이고 일상적이며 한적하기까지 하다.

     
    <신의 한 수>는 캐릭터들이 각자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영화다. 먼저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흑백 기원. 태석(정우성)이 형(김명수)과 함께 살수(이범수) 일파와 내기 바둑을 펼치는 곳이다. 결국 이곳에서 태석은 형을 잃게 되고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이후 아다리(정해균)와 딱밤 대결을 펼치는 곳도 바로 이 장소다. 이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데,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흑백 기원’이 바로 그곳. 광운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최근 점점 현대화되면서 깨끗해지고 있는 기원들과 달리 옛 느낌이 나는 기원을 찾아 헤매던 제작진들이 몇 달 만에 찾아낸 곳이다. 태석에게 이 장소는 의미심장한데, 오로지 바둑 밖에 모르는 어리숙한 프로 기사였던 그가 한 순간에 추락하게 되기 때문. 삶의 바닥에서 다시 기어올라온 그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

     
    태석에게 오래된 기원이 뜻 깊은 공간이라면, 살수의 아지트는 의외로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가게들을 빠져 나와 건물 계단을 오르면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돈 다발을 쌓아 놓은 채 수많은 사람들이 흑백의 돌을 놓으며 전투를 벌이고 있다. 흔히 도박장이라고 하면 은폐된 공간에 비밀스럽게 자리잡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통념을 깬 것이 바로 시장과 인접한 이곳이다. 도박장 내부는 세트를 통해 제작되었지만, 주변 모습과 옥상 주차장 등은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았다.

     

     

    대문 앞에서 본 숙소인 휴안 게스트하우스. 윤형준 대표는 영화에 주소가 그대로 나올 줄은 몰랐다며 웃음을 지었다. ⓒ최순호

    북촌 골목길 어디서나 마주하는 기와지붕. ⓒ최순호

    숙소로 등장하는 휴안 게스트하우스의 한옥 방 문. ⓒ최순호

    까페 '지유가오카핫초메' 안엔 <자유의 언덕> 영화 포스터가 있다. ⓒ최순호

     

    앞이 보이지 않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돌을 놓는 주님(안성기)의 공간은, 어쩌면 당연히 탑골공원 근처인 관철동이다. 영화 속에서 소주병을 옆에 놓고 주님이 사람들과 내기 바둑을 두는 장면은, 그다지 낯설지 않은 ‘현실적 풍경’. 어쩌면 이 공간은 영화 <신의 한 수>의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며, 영화 속에선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태석과 주님이 처음 만나고 그를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인연’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태석을 중심으로 한 팀이 되어 살수에 맞서는 사람들은 주님과 허 목수(안길강) 그리고 꽁지(김인권)인데, 주님에게 관철동 길 바닥이 있었다면, 꽁지에겐 세운상가가 있다. 태석의 형과 함께 일했던 꽁지는 사건이 있던 그날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갔던 태석은 출소 후 꽁지를 찾아가는데, 여전히 그는 세운상가의 좁은 길을 누비며 ‘양아치’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한편 허 목수의 공간은 허름한 고물상. 도박으로 한쪽 손목까지 잃은 그에겐 삶의 막장과도 같은 곳으로, 도시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고물상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과거를 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허 목수의 인생과 닮아 있다.

     

     

    까페 '지유가오카핫초메' 전경. ⓒ최순호

    '뽈뽀프레스' 내부. 모리(카세 료)와 영선(문소리)이 와인을 마신 곳. ⓒ최순호

    '뽈뽀프레스' 전경. 한옥을 리모델링해 레스토랑을 꾸몄다. ⓒ최순호

    북촌 재동초등학교 정문 앞길. <자유의 언덕> 엔딩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최순호

    윤보선 가옥 맞은 편에 있는 안동교회 벽면의 담쟁이 넝쿨. ⓒ최순호

    사적 제438호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 전 대통령 가옥. ⓒ최순호

     

    이처럼 <신의 한 수>는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성격과 꽤 거리가 있는 서민적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해 리얼리티를 높인다. 이것은 메가폰을 잡은 조범구 감독의 성향이기도 한데, 그의 전작인 <퀵>(2011)도 도로를 질주하는 스피디한 액션 영화였지만 남녀 주인공이 바닷가의 횟집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있다.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이 신을 자신이 직접 집어넣었는데, 이것은 일상적 공간에 대한 그의 애정 때문이었다고. <뚝방전설>(2006)이나 그의 데뷔작인 <양아치 어조>(2006)도 거친 액션이 등장하는 영화였지만, 그 배경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배꼽(이시영)이 운영하는 마작 바는 <신의 한 수>에서 가장 이질적인 공간일 것이다. 살수의 수하인 배꼽은 바의 마담이자 내기 바둑의 배후 인물인데, 태석은 이곳을 통해 배꼽을 만나 살수를 자극하고 자신의 복수 계획을 진행시킨다. 청담동에 실제로 있는 바를 섭외해 촬영했는데, 마치 바의 바깥과는 격리된 듯한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다.

     
    영화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올드보이>(2003)에서 오대수(최민식)와 감금 방을 연결시키는 것처럼, 인물과 공간을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신의 한 수>는 그다지 자극적인 비주얼의 공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의 경제학’을 성취한 작품이다. 우린 이 영화를 떠올릴 때 태석이 통쾌한 복수를 하던 그 낡은 기원과 주님이 내기 바둑을 두던 관철동의 골목, 수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불태우던 수산시장의 도박장과 꽁지가 죽을 힘을 다해 뛰던 세운상가, 허 목수가 피로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던 고물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공간들이 마치 바둑의 여러 집들처럼 모여 <신의 한 수>라는 영화를 구성하고 우리는 그 안에 갇혀 혈투를 벌이는 인간 군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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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VON 2014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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